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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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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말드 부흥 계획 103일 차.
이렇게 쪽지의 형식으로 보고서를 올려드립니다.
날씨가 추워 글씨가 명확하지 않은 점 죄송합니다. 갈레말드에는 폭설이 많이 내렸어요.
당신이 총대를 매고, ‘바닥난 청린수를 구해오겠다.’ 고 말씀을 하셨었죠. 청린수 자체는 갈레말드에서 유용하게 쓰였던 연료가 맞지만. 그에 관한 재미있는 역사가 있답니다.
혹시, 갈레말이 근처 약소국가에서 청린수를 약탈했다는 오랜 역사도 알고 계셨나요? 일사바드 대륙에 살았던 저는,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던 사실입니다.
그래서 전 추위를 싫어합니다. 기온이 그렇게 낮지 않음에도, 유난히 많은 장작과, 유난히 두꺼운 옷을 입는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 지요. 시린 바람을 맞다 보면, 추위에 떨어 붉어진 얼굴을 감싸다 보면. 가난한 시절의 기억이, 저를 따라오는 기분이에요.
-갈레말 제국만 없었어도, 그들이 저희 마을을 습격하지만 않았어도.
당신은 어떻게 청린수를 구해오실 건가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자신만만 하셨던 거죠? 갈레말 제국이 패하고, 근처의 모든 마을, 제 고향 포함 대부분 마을이 재건을 하고 있을텐데. ‘딱 봐도 ‘갈레말드에서 온 이방인’ 처럼 보이는 당신을, 바보처럼 갈레말드인들을 도와주겠다고. 갈레말드인들을 위해 힘써주겠다고, 쉽게 청린수를 나눠줄 것으로 생각했나요?
아니면, 당신도 그들처럼 똑같이, 약한 자들의 청린수를 약탈할 계획인가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희는 ‘갈레말드 부흥’ 을 위해 만났지만. 그래서 우리는 석 달이라는 시간 동안, 추위에 떨고, 위험한 몬스터들을 토벌하며. 갈레말 인간들을 위해 힘써줬지만.
저는 당신이 청린수 연료를 구해오게 가만히 둘 순 없습니다.
저를 믿으셨나요?, 전 일사바드 대륙에 살아왔고, 일사바드 대륙에서 갈레말의 침공을 받아온 사람입니다.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는 이상, 갈레말드의 재건 -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죠. 갈레말 인간들이라면 치가 떨리고. 하루라도 빨리 짓밟아 버리고 싶은 것을, 당신이 저를 믿고. 갈레말드를 맡기고. 떠날 때까지. 하루하루를 기다렸습니다.
강의 다리를 끊어놨어요. 강의 다리 앞에 위험한 마법진도 설치했으니, 오실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게 좋아요. 편지에는 비행 마법을 걸어뒀으니, 하루면 당신의 곁으로 도착하겠죠. 이 편지를 읽을 당신의 표정도 상상이 가요. 괴로워하시겠죠. 당신은 이 프로젝트에 상당히 진심인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요.
비에라 족은 나이를 알기 힘들어, 몇 년이나 오래 사셨을지 모르겠지만. 다음부턴 사람을 믿고 무언가를 맡길 때에는, 조심히 맡기시길 바라요. 당신이 바라던 계획이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게 제가 바라던 계획이었다는걸 아셨으니. 조금은 위로가 되셨을까요? 비록 세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험하면서. 그래도 즐거웠었으니까요.
처음이자 마지막 보고서를 올려드립니다. 다시는, 갈레말드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마세요.
당신의 동료였던 아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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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말드 부흥 계획 108일 차.
당신 참 웃기는 사람이네요.
당신이 감춰둔 듯 보이는 - , 이 편지는 뭔가요? [이상한 생각에 빠져있을 아샤에게] 라니.
첫 번째 편지에서 말했으니,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오늘 아침에, 마을의 마지막 남은 청린수 통을 없애러 갔는데. 그 청린수 통에 청린수는 없고, 당신이 남긴 이 쪽지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에요. 마치 제가 청린수 통을 없애려는 걸 알 고 있었다는 듯이 !
설마 당신, 떠나기 전에 눈치를 챘었던 걸까요? 아니면 세 달 동안 반복되었었던, 당신의 그저 ‘가벼운 장난’ 인가요? 거기에다가, 이건 또 뭐에요!. 제가 청린수 통 근처로 가니, 근처 아이들이 나와선. ‘토끼 오빠의 말이 맞았어!’ 라며 저에게 눈으로 만든 토끼와, 눈으로 만든 고양이, 여러 동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당신은 늘 그런 식이었어요. 제가 이곳 갈레말드에 처음 오고, 적응을 잘 못 하고 있을 때에도. ‘함께 모험하고 근처의 마을을 토벌하자’ 며 손을 내밀고, 앞장서고, 모든 걸 안다는 듯 행동하고, 챙겨주고 .. -
당신, 무슨 짓을 했는지는. 돌아와서 똑똑히 책임지고, 또 보길 바라요!.
아, 돌아오시지는 않으시겠지만.
아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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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말드 부흥 계획 113일 차.
.. 제가 제발 편지를 그만 쓰게 만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내가 돌아올때 까지, 편지를 계속 써줘.]
라니, 이게 당신의 답장인가요? 저를 뭐로 보시는거죠?
저는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당신에게 쓰는 편지! 이런 일 말이죠.
거기에, 답장을 한다는 게 한 줄이 말이 되요? 물론, 그게 중요한게 아니죠. ‘돌아올 때’라니, 제 경고를 여태까지 무엇으로 들은 거죠? 다리는 끊었고, 다리 앞에 위험한 마법을 설치했다고요!
-… 제 계획은, 당신 덕분에. 진행이 하나도 되고있지 않습니다.
당신, 당신의 흔적을 여러 곳에 숨겨놓았더라고요. 방화 마법을 쓰러 번화가에 갔을 때에는, 당신이 쓴 쪽지가. 학교에 갔을 때에는, 당신이 가져다 놓은 책이 있었어요. 당신이 쓴 책처럼 보였는데.
제가 당신에 대해 오해한 부분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당신도 갈레말 체제에 대해 증오한다는 것, 당신도 ‘제국’에 대해 증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당신은, 갈레말이 갈레말이 아닌, 제국이 아닌 국가로서 재건하길 원한다는 것과. 주변국에 대해 정당한 보상 및 사과를 하기위해, 갈레말드의 재건 및 정치 상황을 간섭하고 있었던 것.
네, 솔직히 당신에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당신이 평소에 하던 시덥지 않은 장난과 비교할 수 없이요, ‘편지를 계속 써달라’ 고 답장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죠? 이 때 쯤이면, 제가 당신이 남겨놓은 ‘힌트’를 알아챘을 것이고, 당신에 대해서 더 이해할 수 있다고.
당신은, 처음부터 제가 갈레말드에 적대적인 것도, 잘못하면 이곳의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 있었단 것도 알고 있었으면서. 당신이 저에게 이곳을 맡기고 청린수를 찾으러 떠난 이유는. 제가 당신의 흔적을 보고, 생각을 바꿀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인가요?
당신은, 저를 고작 석 달밖에 만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저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죠?
당신은 진짜 최악이야, 그 때 대 빙벽에서 몬스터를 무찌를때, 나는 표정에 감정이 다 보인다고 말했던 것, 이렇게 내가 갈레말드 사람들을 없앨 거라고, 미리 알고 있었단 듯, 준비하고, 대비하고 떠난 당신의 그 행동, 최악이에요. 정말 최악, 최악 !! -
“….아샤, 큰일 났어요!”
큰일?, 순간, 뺨가에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에 아샤는 급히 펜을 내려놓았다. 얼마나 급하게 찾아온 것인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갈레말드의 소녀는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 다급해 보이는 소녀에 아샤는 몸이 굳는다. 무슨 일이야, 숨 쉬어. 따듯한 차라도 줄까?, 그녀를 걱정하는 얼굴로 바라본 아샤가 막 내린 뜨거운 물을 그녀에게 내밀었을까.
“이안씨가, 이안씨가 다친 채로 돌아왔는데 ..”
“…..”
“마물의 습격을 받아서,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시려다 .. -”
뜨거운 물이 들어있었던 잔은 그대로 아샤의 발등으로 떨어졌다. 소녀는 그것을 보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최악이야. 당신은 끝까지 최악.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몸은 움직여진다. ‘이성’보단 ‘본능’ 이 그녀를 움직이게 하였다. 이 행동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 자신은 그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었고, 당신은 아직 여기서 생을 마감하면 안 된다.
분명 자신이 그를 제일 먼저, 떠나가게 하였으면서. 다치게 하였으면서. 아샤는 자신의 소환서를 챙기고, 안경을 급히 챙겨 거센 눈길이 휘몰아치는 바깥으로 급히 나갔다. 추운 걸 분명 싫어하는 자신인데, 쓸모없는 운동과, 체력소모를 싫어하는 당신인데.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자신인데.
이제는, 쓸모없는 자신의 여럿, 자존심들 보다 당신을 잃는 게 더 싫어서.
*
“이안, 이안 - “
통신마법도 통하지 않는다. 생존 확인을 위한 에테르 교감이나, 감지도 통하지 않는다. 불안하다. 공기 중의 불안정한 에테르 농도가 느껴진다. 이건, 분명히 약한 마물은 아닐 터. 숨이 벅차오르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 몇여 년 전, 동료를 구하러 동굴 끝으로 달렸던 그 때처럼.
왜, 당신은. 이곳에 오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온 거야. 다시 돌아와서, 당신도 아닌, 다른 사람들부터 지켜낸 거야. 분명 오지 말라고, 오면 다친다고. 자신이 강한 마법을 설치했다고. 그렇게 경고했는데, 왜 -
“이안! -”
새하얀 눈 위의 이질적인 검푸른 색. 자신의 마법을 정통으로 맞았는지, 검은 그을음과 눈 위의 빨간 핏자국에 잠시 정신이 아득해진다. 제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원망스러운 마음을 꾹, 꾹. 누르며 모진 말로 그를 쏘아붙여도, 그는 대답이 없었다. 왜 당신은 항상,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돌발 행동을 하고. 자신을 이상하게 만드는지.
“오지 말라고, 오면 다칠거라 경고했잖아요.”
“….”
“왜 항상 모든걸 안다는 듯이 행동하는 거에요? 그 결과가 이건가요?”
새하얀 눈밭에서 미물에게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 이것이 미래를 감지한 당신의 미래인가요?
떨리는 손으로 서툰 치유 술을 해보았지만 듣지 않았다. 진작에 치유술을 연구하면 좋았지만, 동료들을 잃은 후, 더 강한 자신이 되겠다 라며. 여러 마법을 연구한 자신은. 정작 남을 돌보는 마법 하나조차 익히지 못했다. 기본적인 상처 하나 치유하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자신이 웃기다. 내가 다치게 만들었으면서. 정작 그가 다쳤다는 소식을 하나 듣고 이렇게 달려오는 꼴이라니. 이젠 자신도 자기 생각을 모르겠다. 머리가 복잡하다.
“왜 당신에게 마음을 열려고 할 때에, 이렇게 사라지려고 하면 저는 이제 누구를.. -
“….결과는”
죽을것같이 시리도록 차가운 눈밭 위에서, 따듯한 숨결이 볼 가로 느껴진다. 아샤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의 치유 술이 혹시나, 제대로 발동이라도 된 걸까. 마나의 흐름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그의 목소리인 것 같은, 작은 속삭임에 손이 떨린다. 이안, 이안?. 두어번 중얼였을까. 그는 힘겹게 입을 떼었다.
“결과는, 너가 이렇게 구하러 와줬잖아.”
모든걸 알고 있었어. 너가 나를 배신할 것도, 너가 나를 다시 구하러 와 줄 것도.
너는 얼굴에 모든 생각이 다 보이거든. 힘겹게 손을 뻗어오는 그에, 아샤는 매섭게 그의 손을 내리쳤다. 치유에 방해되요. 고개를 푹 숙인채, 다시 마나의 흐름에 집중하려 하지만. 하나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왜 자신은 그를 구해준 걸까. 고작 편지 몇 번에 생각을 바꾸어 버릴 만큼, 자신과 이 남자의 관계가 그렇게 깊었었나. 왜, 나는, 내 고향도, 친구들도, 가족도, 모두 괴롭게 만든 갈레말드를. 이 남자를. 왜 도와준 거야.
“너는 착한 아이니까, 나를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있지만, 사람들을 죽이고 싶지도 않았겠지.”
“…”
“그리고 그걸 나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을 거고.”
계획범죄는 더 악독한 사람이 해야 하는 거란다.
어느새 피가 멎어간다. 이제 됐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이안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자신에게 몇 가지 치유 마법을 건 채, 밝아진 안색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고마워, 아샤. 너가 나를 구해줬어. 그녀에게 다정히 웃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자, 잠시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힘이 풀린다. 자신은 결국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도, 없애지도 못하고 ‘구해주었다.’ 누군가를 구하는 것은, 자신이 제일 못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없애는 것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누군가를 구해주었다. 구해줘서 고맙다는 소리와 함께.
“마물이 근처에 있어, 주변에 은신술을 썼지만, 금방 풀릴 거야.”
“.. 그럼 당신은 왜 도망가지 않고 .. !”
“잔소리는 이따가 하고, 그러니 도와주지 않을래?”
지금의 너라면, 앞으로도 날 계속 도와줄 것 같은데.
적어도, 너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을 살아온, 비에라 족의 믿을만한 감각이야.
‘살아서 돌아갈거야.’라는 그의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을 울렸다. 여태까지의 시간선에 살아오며, 그녀가 듣고 싶어했던 말이기도 했고. 그녀에게 필요했던 말이기도 했다. 결국 또 이렇게 누군가를 믿게 되었다.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강해지겠다고 여러 번 되뇌이고, 강조했지만. 결국, 자신은 강해지지 못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난 악역엔 어울리진 않나 봐요. 작게 중얼이는 그녀의 속삭임을 언제 들은 것인지, 그는, ‘악역은 나 같은 사람이나 어울리지.’ 라며 웃는다.
“도와줘, 아샤. 그리고 함께 돌아가자.”
당신은, 또, 모든걸 안다는 듯이 말한다. 내가 어느 말에 슬퍼하고, 어느 말에 기뻐하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함께 돌아가자는 그 말. 그의 말 한마디에 아샤는 고개를 숙였다.
당신은, 내가 어느말에 슬퍼하고, 어느말에 기뻐하는지 잘 알아요.
*
“아 - 샤!”
갈레말드에 온지, 307일째.
어느세 일 년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예전의 계획이 그대로였었다면, 나는, 반년 안에 이 나라를 떠날 생각이었지만. - 뭐,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생각도, 사람도 바뀌는 거겠죠.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 모두 진실이 아닐 수도 있고요.
저는 여전히 갈레말드가 싫습니다. 가족, 어머니, 아버지. 사랑하는 사람들. 이웃들. 모두 다 잊지 못할 거에요. 과거에 갈레말드가 저희에게 했던 행동이 싫고, 용서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요. 이 하얀 눈밭에 퍼트려져 있던 빨간 이질적인 핏자국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핏물은. 제가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하겠죠.
-저는 이 하얀 눈밭을 다시 올바르게 정리해보려 합니다.
차츰차츰, 소복이 쌓이는 눈처럼. 결국에는 사람들의 슬픔이 녹아들겠지만, 영원한 얼룩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얼룩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안씨와 함께, 이안씨의 의견에 동의해. 이 하얀 눈밭을 다시 정리하기로 했어요.
참 특이하죠. 전 이안씨를 배신하기도 했고, 용서하지 못할 행동까지 하고. 크게 다치게 하여, 그는 일주일을 병상에 누워있었는데도. 병상에 일어나자마자 ‘이제 생각정리는 다 했지?, 같이 일하자’ 라고, 손을 내밀더라니까요.
이안씨는 제가 처음에 이곳에 도착할 때부터, 말 몇 마디를 나누자마자 제가 자신을 배신할 거라는 것을 딱 알아차렸대요. 언젠간 - 잘못하면 죽일수도 있겠구나. 라고요. 그렇지만, 함께 모험하는 수많은 시간동안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 게 느껴졌고, 이 여린아이는 누구를 죽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제가 갈레말드 사람들을 몰살하려고 했던 계획도, 자신이 마냥 내버려뒀다면 결국 저에게 상처로만 돌아왔을 거라고…
정말 이상한 사람. 그렇지만 그 사람은 내버려두지도 않았고, 제가 제 자신에게 상처입히도록 떠나지도 않았어요. 다정한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 이지만 .. - 맞다.
그의 머리 끝 부분이, 하얀 눈 색이신 건 아시나요? 제가 말을 안했었나, 그러니까. 으음.. 제가 갈레말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만났던 비에라족 남성인데요. 푸른 머리칼 끝에 은은하게 물들여진 하얀, 눈 같은 머리색이, 꼭 … -
“나마즈오를 닮았어요.”
우, 우왓, 깜짝이야! -
익숙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아샤가 펜을 집어 던지자 아샤의 어깨에 장난스레 손을 올린 이안은 그녀가 떨어트린 펜을 주우며 가볍게 웃었다.
“이안씨는 다정한 사람이에요, 좋은사람 .. 까지 봤는데, 그 뒤엔 뭐라고 쓰려 했어?”
“이안씨랑 나마즈오가 뭐가 닮아요!”
“너 나마즈오 좋아하잖아”
나마즈오가 훨씬 잘생겼죠!
내가 살다 살다 메기한테 외모로 지네. 라며 그는 아샤의 펜 끝에 달린 나마즈오 피규어를 장난스레 툭, 툭 친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아짐 대초원에 있는 나마즈오들이 얼마나 잘생겼는데요! 세이게츠는 잘생겼고, 교신은 귀엽고, 또 .. -
“원래 유목 아우라족이 나마즈오들을 사냥해 먹었던 것, 알아?”
“그, 그만!”
그는 반응이 재밌는지 연신 웃다가, 얼굴이 붉어진 아샤를 보곤 펜을 돌려준다. 이렇게까지 자기 자신이 누구를 열심히 놀린 것도 오랜만인데. 어쩌다 보니 이 고양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져 버렸다. 갈레말드에 온 지 벌써 일 년이라. 그래도 불투명했던 자신의 계획이 아샤덕분에 차근차근히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게, 다행이기도 하다. 처음 올때는 진짜 막막했지. 망할 솔 할아버지들의 광신도도 아직도 있었고, 제국을,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위험한 사상을 사진 사람들도 있었고 .. -
“그럼 이안씨는 이곳에 왜 온건데요?”
아샤가 묻자 이안은 의외의 소리를 들었다는 듯, 으응? 하며 되묻는다. 그러니까 이안씨는 자기 이야기를 잘 해주지 않으니까. 라며 우물쭈물, 눈치를 보며 이안에게 물었을까. 이안은 두어번 웃다 쓸대없는 생각이라는 듯, 아샤의 머리를 헝클었다. 나야 뭐. 여행하다가 왔지. 과거 이야기는 더 친해지면 해주려고 했는데?
“.. 그, 그러면. 오늘은 파티를 열어야겠네요! 마을 사람들과. 포도주 파티에요!”
“너, 저번에 술마시다가 타이탄 에기 소환해서 쑥대밭으로 만든 건 생각 안 하고 -”
“오늘은 소환책 저 멀리 치워둘 테니까요!”
“너,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다가 저번에 내 얼굴,발로 찬 건 기억 안 나?”
어쨌든, 자신은 무슨 이유가 돼서든, 꼭 이안에 과거에 대해 들어야겠다며 의기양양하게 터벅터벅, 걸어나간다. 오늘 여러 가지 재건 작업 때문에 바쁘다고, 학교랑 제대로된 역사 교육과. 그를 위한 교본도 인쇄하러 가야 해요. 라며 새침하게도 덧붙이면서.
하여간, 이젠 자신보다 더 열심이다. - 오늘은 내가 몇 살인지, 그것부터 알려줄까? 라고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말하니, 말로는 ‘됐거든요!’라며 귀가 쫑긋 인다. 하하, 자신에 대해서 궁금해 한 사람은 많았지만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나 당신에 대해서 궁금해요. 알고싶어요. 라고 얼굴에 쓰고 다니는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딱히 알려주기 싫은 건 아니지만, 반응이 재밌어서. 자신도 모르게 계속 장난치게 된 이안이었다. 그래, 그래. 이후엔 어떤 것부터 알려줘야 하나. 하나하나, 알려주려면 하루 안에 말하기는 힘들 텐데. 앞으로 모험도, 다른 여러 일도. 볼 일이 많을 것 같으니. 모험을 하면서 하나, 하나 차근차근 말해줘야겠다. 적어도 어린 미코테보단 오래 산 비에라 족의 감이라고 해야할까. 우리 앞으로, 오래 오래 볼 것 같거든.